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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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여흥, 자는 상지(尙之), 호는 우천(牛川)이고, 승지(承旨)를 지낸 민세량(閔世良)의 아들이다. 1568년(선조 1) 생원시를 거쳐 1582년(선조 1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에 올랐다. 성균관 전적과 공조·형조·호조·예조의 좌랑·정랑을 두루 역임하였고, 지평을 거쳐 외직으로 나가 숙천부사·서흥부사를 지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외직에 재임하면서 피해를 수습하는 데 힘을 기울였고, 명나라 군사들의 군량미 조달 임무도 수행하였다. 1589년 정여립(鄭汝立) 모반 사건으로 인해 기축옥사(己丑獄事)가 일어나 다수의 동인(東人) 인물들이 처형되었을 때 최영경(崔永慶)을 무고하였다 하여 1602년(선조 35) 탄핵을 받고 수안군수로 좌천되었다가 벼슬을 단념하고 은둔 생활을 하였다. 율곡 이이와 교유하였다.
□ 참고문헌 : 『여흥민씨삼방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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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