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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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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여주군 근남면 지역인데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개편 때 김대동, 송당동 등을 병합하여 김대동의 김(金)자와 송당동의 당(塘)자를 따서 금당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 금당1리를 김대, 금당2리를 송당동 또는 소댕이라 한다.

  • 소댕이, 조촌동 : 옛날 물무재 너머에 백천 조씨(白川趙氏)가 터를 잡았다하여 조촌동(早村洞)이라 불러오다가 해방 이후 송당들이란 부락 앞들 이름을 따서 송당동이라 하였다가 변음되어 소댕이라 하였다 한다. 야산 등성이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 안강(安康)골 : 조선 효종 때 금당2리에서 금당1리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 조촌동이라는 부락 안으로 조씨와 송씨 몇 호가 터를 잡고 편안하게 살았기 때문에 이곳을 안강골이라 하였다 한다. 안강곡은 안강골의 다른 이름이다.
  • 떡밭댕이 : 금당2리에서 서쪽으로 2km쯤 떨어진 곳으로, 옛날에 대포산 , 철갑산, 갱금산 등 고산에서 전쟁을 하다 승리하고 나서, 이곳에서 떡을 해 먹었는데 떡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떡쌀을 씻은 물이 흘러 점동면 청미천까지 탁하게 흘러서 ‘떡바뎅이’라 불렀다고 한다. 옛날 이곳에 큰 부자가 살았는데 오는 손님마다 떡을 해서 후하게 대접하자 그 집 하인들이 식역이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하인들이 부근에 있는 절의 스님에게 손님이 오지 않으면 우리 신세도 편안할텐데 하고 하소연하자, 스님이 말하길, “옆에 있는 연못에 살고 있는 이무기를 죽여야 하는데 그 방법으로는 길가에 대나무쪽을 박아놓으면 이무기가 지나다가 찔려죽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 후 이무기가 찔려 죽고 나자 부자는 망했다고 한다. 또 옛날 이곳에 큰 부자가 살았는데 그 부인이 외로이 살기 때문에 손님들에게 떡을 해서 잘 대접하였다 한다. 그러자 그 옆 연못에 살고 있던 이무기가 샘이 나서 그 부인을 해치자 그 부자는 하루아침에 망했다고도 한다. 한편 옛날 부자가 망하고 나서 조행섭(작고)씨가 그 터를 찾아 집을 다시 짓고 살았는데, 6·25 전쟁 때 난리를 피해 이곳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잠시 피난민 수용소가 되었던 적도 있었다 한다.
  • 개경주 : 금당2리에 있는 마을로, 금당교회부근을 말한다.
  • 골말 : 금당2리에 있는 마을로 골짜기에 마을이 형성되어 골말이라 하며, 진씨, 신씨가 처음 살았다 한다.
  • 김대 : 먼 옛날 이곳에 금전팔이들이 많이 살았는데 금전팔이의 금(金)자와 금을 판 장소가 연대산 이어서 연대의 대(垈)자를 따서 김대라 불리었다고 한다. 금당1리의 옛 이름으로 금대동(金垈洞)이라고도 한다.
  • 학교모탱이 : 금당2리 서쪽 모퉁이에 초등학교가 있었다하여 학교모퉁이라 하며, 지금은 금당1리에 금당초등학교가 건립돼 있다.
  • 황새머리 : 이 지형이 황새머리처럼 생겼다하여 황새머리라 하는데,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여기에서 큰 인물이 태어날 것이라는 것이다. 이에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두려워하여 그 혈을 끊을 목적으로 그곳을 파헤쳐 길을 만들었다 한다. 또 옛날 묘터를 잡을 때 지관이 묘를 얕게 파서 묻자, 이상히 여겨 지관을 잡아 고문을 가하여 그 이유를 묻자, 그러면 한자만 더 파봐라 했더니 그 속에서 황새(또는 학)가 날아 갔다하여 황새머리라 한다.
  • 천마산 선바위 : 말이 하늘로 날아 올라가는 형상이라 천마산(天馬山)이라 하는데 그 정상에는 선바위(선암-仙岩)라는 큰 바위가 서있어 이 지역에서 큰 인물이 날 것이라고 했다. 이에 일본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두려움에 그 혈을 끊는다 하여 그 바위를 깨뜨리자 바위에서 피가 솟아 나와 골짜기로 흘러 내렸다는 것이다. 골짜기의 흙의 색깔이 검붉은 색인데 그 이유가 바위에서 흘러나온 피가 온 골짜기의 흙을 적시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옛날 효성이 지극한 사람이 이곳에 살았는데 아버지가 병이 나서 위독하자 꿈에 신선이 나타나 뒷산(천마산) 바위 밑을 보면 꿩이 숨어 있으니 그 꿩을 잡아다 아버님께서 드시면 병이 나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바위 밑을 보니 정말 꿩이 숨어 있어 잡아다가 잡숫게 해드리니 아버님의 병이 쾌차하였다 한다. 그래서 선바위(선암-仙岩)라 불리게 되었다 한다.
  • 장암사 : 1940년경 평양에서 온 사람들이 절을 세워 운영했으며, 나중에 어떤 보살할머니가 관리했는데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빈 절이 되었다 한다. 1970년 작고한 마을주민 노병준씨가 꿈을 꾸었는데, 스님 한 분이 나타나 신선바위(선바위)밑에 사찰을 건립하고 장암사(張岩寺)라 하라는 현몽을 받아 부락민이 건립한 사찰이다
  • 금당교 : 지방도로 335호상인 가남면 금당2리에 있으며, 1969년도에 놓은 다리로 연장 10m, 둑 6m, 높이 2m, 1경간이다.
  • 송당교 : 지방도 335호상인 가남면 금당리2에 있으며 1969년도에 놓은 다리로 연장 5m, 폭 5m, 높이 2m, 1경간이다. 앞개울이 흘러가고 있다.
  • 물무재고개 : 금당2리에서 금당1리로 넘어가는 곳에 있는 고개로, 옛날 배천 조씨(白川趙氏)가 이 부근에 터를 잡고 살았다 한다.
  • 금당리 선돌 : 조선시대 태종의 부마가 덕실(점동면 덕평리)에 살았는데, 어느 날 강금산에 올라가 이곳에서 내 눈에 보이는 땅을 다 소유하고 싶다는 말을 하고, 사람을 시켜 그 뜻을 임금에게 고했다. 임금은 “그래 어디까지 보이더냐”고 묻자, “남대문 턱이 보일 듯 말 듯 하다”고 아뢰었다고 한다. 이에 임금은 부마를 처벌할 수 없어 그 사람을 가두고 신하들을 시켜 강금산을 정찰하게 한 후 강금산으로부터 사방 10리 경계표시인 선돌을 세우고 그 안에 있는 토지를 부마에게 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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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