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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굉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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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 : 점동면 관한리
□ 시 대 : 조선

이지굉(1584~1642)은 인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여주, 자는 수오(守吾), 호는 동명(東溟)이다. 병조판서(兵曹判書) 이계손(李繼孫, 1423~1484)의 후손이자 익헌공(翼獻公) 이상의(李尙毅, 1560~1624)의 아들이다. 1612년(광해군 4) 음보(蔭補)로 벼슬에 나아가 와서(瓦署)의 별제(別提)가 되고 태인현감(泰仁縣監) 등을 지냈다. 1618년(광해군 10)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통례원상례를 거쳐 호조와 병조 등의 낭관직(郎官職)을 역임하였다. 광해군의 난정시 처신을 신중히 하였으며, 인조반정 후 경기어사(京畿御使)로 발탁되었다. 이후 여러 고을의 수령을 거쳐 군자감정(軍資監正)에 이르렀고 사후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묘는 관한리 윗말에 있는 정각사의 뒤쪽 오압산 구릉에 자리 잡고 있다. 묘역에는 망주석(높이 173, 폭 40, 두께 39), 문인석(높이 177, 폭 54, 두께 39)의 옛 석물이 갖추어져 있으며 혼유석, 상석, 고석, 향로석은 최근에 추설하였다. 묘역의 좌우에 서 있는 문인석은 금관조복을 입고 있으며 홀(笏)을 턱밑에 받치고 있다. 얼굴과 손의 표현이 매우 사실적으로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망주석은 별다른 문양을 장식하지 않았다. 봉분의 좌측에 방부개석 양식의 묘갈이 건립되어 있는데, 오석의 비신 전면에 피장자의 신원을 쓰고 나머지 세면에 묘갈문을 각자하였다. 종손(從孫)인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이 “증가선대부(贈嘉善大夫) 이조참판(吏曹參判) 이공(李公) 묘갈명병서(墓碣銘幷序)”라는 제목의 묘갈문을 짓고 10세손 이병직(李丙稷)이 단정히 써서 1936년에 입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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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