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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장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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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 : 가남읍 대신리
□ 시 대 : 조선

유장(1431~1451)은 문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전주이며 고양군수 유맹기의 아들이다. 관직은 재학(才學)으로 천거되어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지냈다. 사후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에 추증되었다.

묘는 대신리 삼은농장의 서쪽 구릉에 동향(東向)으로 자리 잡고 있는 아버지 유맹기의 묘 바로 아래에 위치한다. 묘역에는 문인석(높이 184, 폭 36, 두께 28) 1쌍의 고(古) 석물과 상석, 고석, 향로석의 신(新) 석물이 갖추어져 있다. 복두공복을 착용한 문인석은 머리가 신체에 비해서 크고 광대뼈가 튀어 나온 특징이 있다. 좌측 문인석은 절단되어 몸체의 아랫부분만 남아 있고 우측 문인석은 복두 윗면이 훼손되었다. 그리고 봉분 앞에는 유맹기의 봉분처럼 일렬로 장대석(높이 40, 폭 374, 두께 매몰)을 설치한 뒤 그 좌측(높이 18, 폭 170, 두께 25)과 우측(높이 35, 폭 205, 두께 25) 끝에 다시 장대석을 45°각도로 배치한 옛 호석(護石)이 설치되어 있다. 또한 호석의 오른쪽 앞에는 1995년에 건립한 방부개석 양식의 묘표가 있다. 오석의 비신 전면에 “증가선대부(贈嘉善大夫)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전주(全州) 유공장지묘(柳公之墓) 배증정부인(配贈貞夫人) 성주이씨합부(星州李氏合祔)”라고 쓰여 있어 부부 합장묘임을 알 수 있다. 음기는 18대손 유종석(柳宗錫)이 지어서 각자하였으나 서자(書者)는 미상이다. 한편 고석(鼓石) 아래에 있는 옛 상석 받침석(높이 6, 폭 130, 두께 매몰)은 유맹기 묘의 상석 받침석처럼 계체석(階砌石)의 윗면을 돌출시켜 평평하게 다듬었으나 조각 수법은 정교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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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