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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맹기 묘 전경
□ 소재지 : 가남읍 대신리
□ 시 대 : 조선
유맹기(1414~1459)는 세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초명(初名)은 지간(之幹) 또는 지윤(之潤)이다. 완산백(完山伯) 유습(柳濕)의 현손이자 쌍락정(雙樂亭) 유경손(柳敬孫, 1395~1445)의 장남이며 판서(判書) 권인언(權仁彦)의 사위이다. 문음(門蔭)으로 관직에 나아가 지평(持平)과 장령(掌令)을 지낸 후 고양군수(高陽郡守)를 역임했다. 평소 청렴결백한 생활을 하여 청백리(淸白吏)에 선정되었으며 사후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묘는 대신리 삼은농장의 서쪽 구릉에 동향(東向)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묘역의 옛 석물은 문인석(높이 157, 폭 55, 두께 35) 1쌍 뿐이고 상석, 고석, 향로석은 최근에 추설(追設)하였으며 망주석은 세우지 않았다. 복두공복을 착용한 문인석은 두툼하고 커다란 눈의 양쪽 끝 부분이 가늘게 찢어지는 특징이 있으며 허리에는 야대(也帶)를 찼다. 또 봉분 앞에는 일렬로 장대석(높이 40, 폭 304, 두께 매몰)을 설치한 후 그 좌측(높이 8, 폭 180, 두께 25)과 우측(높이 10, 폭 150, 두께 25) 끝에 다시 장대석을 45°각도로 설치한 옛 호석(護石)이 갖추어져 있다. 이 같은 호석은 고려시대의 사각 호석에서 변화 발전된 형태로 조선초기 묘제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그리고 호석 앞에는 방부하엽 양식의 옛 묘표(총 높이 132)가 건립되어 있지만 마모가 극심하여 전혀 판독할 수 없는 실정이다. 그 우측에는 1995년에 세운 방부개석 양식의 묘표가 있다. 오석의 비신 앞면에 “증가선대부(贈嘉善大夫) 이조참판(吏曹參判) 행통훈대부(行通訓大夫) 고양군수(高陽郡守) 전주(全州) 유공맹기지묘(柳公孟沂之墓) 배증정부인(配贈貞夫人) 안동권씨부(安東權氏祔)”라고 하여 피장자의 신원을 밝히고 나머지 삼면에 19대손 유종석(柳宗錫)이 지은 음기를 새겼으나 쓴 사람은 기록하지 않았다. 음기의 내용 중에 묘의 위치가 “대신이리(大新二里) 문곡(文谷)”으로 되어 있어 고지명(古地名)이 문곡임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고석(鼓石) 아래의 옛 상석 받침석(높이 18.5, 폭 122, 두께 매몰)은 계체석(階砌石)의 윗면을 돌출시켜 평평하게 다듬은 후 표면에 2줄의 음선(陰線)을 그어 계체석과 구분하였는데 이 역시 매우 희귀한 유물로 판단된다. 한편 유맹기 묘 좌측에는 조선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무명묘 1기가 있다. 전후사정으로 보아 전주 유씨의 후손 묘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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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