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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담장이 잘 보전된 변광보 묘 전경
□ 소재지 : 금사면 장흥리
□ 시 대 : 조선
변광보(1644~1662)는 현종대(顯宗代)의 인물로 본관은 황주(黃州)이다. 상장군(上將軍) 변려(邊呂)의 후손으로 예조정랑(禮曹正郞) 변경윤(邊慶胤)의 손자이자 금산군수(錦山郡守) 변명익(邊命益)의 아들이다. 소현세자(昭顯世子)의 딸인 경순군주(慶順郡主, 1643~1697)와 혼인하여 품계가 봉순대부(奉順大夫)에 오르고 황창부위(黃昌副尉)에 봉해졌다. 그러나 일찍 요절하여 별다른 행적을 남기지 못했으며, 사후 순의대부(順義大夫) 겸오위도총부부총관(兼五衛都摠府副摠管)에 추증되었다.
묘는 장흥리 장흥마을의 서편으로 뻗어 내린 대렴봉(414.5m) 줄기에 동향(東向)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묘역에는 혼유석(높이 10, 폭 79, 두께 33), 상석(높이 29, 폭 155, 두께 88), 향로석(높이 42, 폭 34, 두께 33), 망주석(높이 175, 폭 36, 두께 37), 문인석(높이 171, 폭 51, 두께 44)의 옛 석물이 갖추어져 있으며, 고석과 동자석은 최근에 추설하였다. 육각 향로석에 장식한 복련(覆蓮)과 운족(雲足)의 문양이 화려하고, 금관조복(金冠朝服)을 착용한 문인석의 머리가 신체에 비해 큰 것이 특징이다. 봉분 주위에 두른 곡장(曲墻)은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나, 많이 퇴락하여 전문적인 보수가 시급한 실정이다. 묘역의 우측에 방부개석 양식의 묘표(총 높이 266)가 건립되어 있다. 방부(높이 43, 폭 114, 두께 72)는 무문(無紋)이나 개석(높이 36, 폭 107, 두께 76)에는 팔작지붕을 올리고 기왓골을 조각하였다. 비신(높이 148, 폭 63, 두께 26.5)의 앞면에 큰 해서로 “증순의대부(贈順義大夫) 겸오위도총부부총관(兼五衛都摠府副摠管) 황창부위(黃昌副尉) 행봉순대부(行奉順大夫) 황창부위(黃昌副尉) 변공지묘(邊公之墓) 경순군주(慶順郡主) 부좌(祔左)”라고 하여 피장자의 신원을 밝히고 있다. 예조판서(禮曹判書) 박세당(朴世堂, 1629~1703)이 지은 묘표음기를 예문관봉교(藝文館奉敎) 박필명(朴弼明)이 단정하게 썼으나 표제(表題)는 기록하지 않았다. 건립연대는 “숭정갑신후(崇禎甲申後) 오십육년(五十六年, 1700, 숙종 26) 시월(十月) 일립(日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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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