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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보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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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 : 여주시 매룡동
□ 시 대 : 조선

박종보(1760~1808)는 순조대(純祖代)의 문신으로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여신(汝臣)이며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 박준원(朴準源)의 아들이자 증이조참판(贈吏曹參判) 원경유(元景游)의 외손이다. 1787년(정조 11) 누이가 정조의 후궁으로 들어가 수빈(綏嬪)에 봉해지자 음보(蔭補)로 관직에 진출, 장악원주부(掌樂院主簿)에 임명되고 이어 의빈부(儀賓府)와 충훈부도사(忠勳府都事)를 역임하였다. 1790년 수빈 박씨(綏嬪 朴氏)가 왕자(훗날의 순조)를 생산하자 왕명으로 궁중에서 보양(輔養)의 책임을 맡았다. 이후 순조가 즉위함에 임금의 외숙(外叔)으로서 동부승지(同副承旨)에 제수되었으며, 호조참판을 거쳐 호조판서에 이르렀다.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묘는 매룡동 승산골의 북쪽 구릉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묘역에는 혼유석(높이 23, 폭 92, 두께 42), 상석(높이 42, 폭 136, 두께 89), 상석받침석(높이 43, 폭 136, 두께 89), 향로석(높이 60, 폭 40, 두께 35), 망주석(높이 175, 폭 41, 두께 41)의 옛 석물이 설치되어 있다. 상석을 받치는 고석(鼓石) 대신에 상석과 동일한 규모의 석재로 상석받침석을 사용한 것이 주목되며, 그 앞으로 육각 향로석을 배치하였다. 한편 봉분의 우측에는 당시의 유행대로 방부개석 양식을 갖춰 묘표(총 높이 약 221)를 건립하였다. 오석의 비신(높이 121, 폭 38, 두께 28) 앞면에 큰 해서로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 자헌대부(資憲大夫) 호조판서(戶曹判書) 박공휘종보지묘(朴公諱宗輔之墓) 증정부인(贈貞夫人) 달성서씨(達城徐氏) 부좌(祔左)”라고 하여 피장자의 신원을 밝히고 있다. 묘표음기(墓表陰記)를 비신의 나머지 삼면(三面)에 각자(刻字)하였으나 표제(表題)는 기록하지 않았다. 음기는 제(弟) 이조판서(吏曹判書) 박종경(朴宗慶, 1765~1817)이 근찬(謹撰)하고 아울러 앞쪽의 큰 해서도 썼다(幷書前面). 그리고 남(男) 홍문관응교(弘文館應敎) 박주수(朴周壽)가 근서음기(謹書陰記)하여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 사임신(四壬申, 1812, 순조 12) 팔월(八月) 일립(日立)”에 세웠다.

이웃한 용강골에는 아들인 예조판서(禮曹判書) 박주수(朴周壽)의 묘소가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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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