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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단이 거의 매몰된 민종현 묘표
□ 소재지 : 여주시 신진동
□ 시 대 : 조선
민종현(1745~1798)은 정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여흥, 자는 공기(公紀), 호는 한계(寒溪)이며 문간공(文簡公) 민우수(閔遇洙)의 손자이자 진사(進士) 민백겸의 아들이다. 1756년(영조 32) 정시문과에 급제 후 관직에 나아가 홍문관응교(弘文館應敎)를 지냈으며, 우부승지(右副承旨)에 재직시 『국조보감(國朝寶鑑)』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후 대사성과 대사헌을 거쳐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의례(儀禮)에 매우 밝아 국가의 예식(禮式)에 대한 많은 상소를 올렸다고 전한다. 시호는 문목(文穆)이다.
묘는 신진동 마을회관의 뒤쪽 구릉에 자리 잡고 있다. 묘역에는 혼유석(높이 20, 폭 76.5, 두께 38), 상석(높이 42, 폭 127.5, 두께 81), 고석(높이 23, 폭 40, 두께 40), 향로석(높이 40, 폭 37.5, 두께 28), 망주석(높이 171, 폭 37.5, 두께 39), 배설석(높이 5, 폭 69.5, 두께 108)의 옛 석물이 갖추어져 있으나, 관리가 소홀하여 잡목이 무성한 실정이다. 정조대의 유행대로 석물에 문양을 거의 장식하지 않았고, 그 기능만을 강조하였다. 봉분의 우측에 방부원수(方趺圓首) 양식의 묘표(총 높이 136)가 건립되어 있다. 비신(높이 126, 폭 50.5, 두께 28.5)의 앞면에 “유명조선(有明朝鮮) 행이조판서(行吏曹判書) 민공종현지묘(閔公鍾顯之墓)”라고 되어 있어 피장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으나 음기나 건립연대는 기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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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