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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흥부원군 홍진 호성공신 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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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 재 지 : 대신면 계림리 318
□ 시 대 : 조선 1604년(선조 37)
□ 지정사항 : 보물 제1308호

교(敎)

충효정량효절협책 호성공신 보국 숭록대부 당흥부원군 겸 지경연사 홍진(洪進) 서(書)

왕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만일 일개의 신하가 자신을 잊고 순국(殉國)함이 있으면 또한 장차 10대를 사유(赦宥)하고 마땅히 성대한 상(賞)을 내려 공(功)에 보답해야 한다. 이에 금용(金鏞)에 공훈을 기록하고 이로써 철권(鐵券)에 거듭 맹세한다. 생각건대 그대는 온화하고 공손하며 정직하고 성실함이 밝혀진 지 오래이다. 학문을 돈독히 하여 희경(羲經)1)에 뛰어났으니 문예는 그 나머지 일이다. 학업(學業)은 가정에서 이루어졌고 충효는 그 근원에서 나왔다. 일찍이 계림(桂林)2)에서 등화(騰華)하여 마침내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 한림원과 중서성에서의 활약(步武)은 성신(星辰)3)에 아주 가까웠으며, 옥부(玉府)와 승정원에서는 조칙(임금의 명령)이 우로(雨露)4)의 혜택을 날리게 하였으니 잠시 국운의 어려움에서 말미암았겠는가? 신기(神器)5)가 유리됨에 이르러 오직 천명은 믿기 어렵게 되었으니 스스로 어찌 능히 잘할 수 있을까. 나의 집(왕실)을 만들지 못할까(유지하지 못할까) 걱정하였다. 오호라! 어디로 돌아갈까. (적이) 기도(箕都)의 땅 깊숙히 미쳐 갑자기 철옹성도 파탕하게 되었다. 존망 위급이 이와 같으니 정돈하여 부여잡을 이는 또 누구인가. 소매를 걷고 배에 오르니 오직 온태진의 강개함이 있어 지고 매고 분주히 다니니 누가 호자범의 현명함과 수고로움 같을까. 만새행궁(피난처)은 오히려 다행히 부모(명나라)와 더욱 가까우니 하양(河陽)에서 관직을 지킴은 쇠미한 왕실의 군신(君臣)과 같지만 나라에 현인이 있어 다시 부흥하게 되었다. 내가 경을 얻어 중하게 썼고, 진실로 초(楚)가 사(士)로 말미암아 존재하였는데 어찌 진나라에 사람이 없다고 이르겠는가. 전례(典禮)에 물어 말을 대신하니 복심(腹心)과 유설(唯舌)이 이것에 의거하였다. 눈물을 흘리며 이로써 임금을 호위하였고 험조와 간난(艱難)을 두루 겪었으며 빈접(손님을 대접함)의 의식을 주선하였고 사령(詞令)의 아름다움을 기리었다. 군국(軍國)의 일을 보좌함에 능히 헌체(獻替)6)의 마땅함을 다하였고, 임진 계사년을 두루 다스려 경갑(庚甲)의 일절(一節)7)을 바로잡고 도왔다. 마침내 종팽(宗祊)8)이 복구됨에 미쳐서 이에 종정(鐘鼎)이 새로워진 바를 볼 수 있었다. 어려운 위기에 힘써 일함을 생각하니 신하됨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전후에서의 충근(忠勤)을 생각하니 오직 그대가 고생이 많다. 경은 (주)나라를 흥하게 하는 데 힘(공력)이 있으니 내가 어찌 거(莒 : 피난처)에 있을 때를 잊겠는가. 인대(麟臺)9)에서 관작을 줌에 한나라 임금이 고굉(股肱)의 어짐을 생각하여 능연각(凌煙閣)에 이름을 새기고, 당나라 태종이 유악(帷幄)10)의 공적을 돌아본 것과 같이 할 것이다. 단지 위대한 공열을 드러내어 장려할 뿐만 아니라 이로써 능히 풍성(소문)을 세워 영원토록 빛남이 있게 할 것이며 덕을 갚지 못함이 없게 할 것이다. 이에 호성공신(扈聖功臣) 이등(二等)에 책훈하고 도형(圖形)은 후세에 전하며, 품계와 작위를 2자급 승진시켜 준다. 그 부모처자 역시 2자급을 승진시켜 준다. 아들이 없으면 생질이나 사위에게 1자급을 승진시켜 준다. 적장손(嫡長孫)은 (작위를)세습하여 그 녹을 잃지 말게 하며, 죄 지은 것은 영세에 미치도록 용서하라. 아울러 반당(伴倘) 6인, 노비 9구(口), 구사(丘史) 4명, 전(田) 80결(結), 은자(銀子) 7냥, 표리(表裏) 1단, 내구마(內廐馬) 1필을 수령하게 할 것이다. 오호라! 공은 선현에 부끄러울 것이 없는데 상(賞)은 오히려 구장(舊章)보다 부족하다. 태산이 숫돌처럼 작게되고 황하(黃河)가 띠와 같이 좁아지도록 영원히 할 것이니 감히 재서(載書)11)의 말을 달리하겠는가. 형상에 단청을 하여 도모한 말을 영원히 볼 수 있게 할 것이다. 고(故)로 이에 교시(敎示)하니 생각하여 마땅히 모든 것을 알라.

만력(萬曆) 32년 10월

  • 1등

    이항복(李恒福), 정곤수(鄭崐壽)

  • 2등

    후(珝), 부(琈), 이원익(李元翼),
    윤두수(尹斗壽), 심우승(沈友勝), 이호민(李好閔),
    윤근수(尹根壽), 유성룡(柳成龍), 김응남(金應南),
    이산보(李山甫), 유근(柳根), 이충원(李忠元),
    홍진(洪進), 이괵(李嘓), 유영경(柳永慶),
    이유징(李幼澄), 박동량(朴東亮), 심대(沈岱),
    박숭원(朴崇元), 정희번(鄭姬藩), 이광정(李光庭),
    최흥원(崔興源), 심충겸(沈忠謙), 윤자신(尹自新),
    한연(韓淵), 기(耆), 경온(景溫),
    경검(景儉), 신잡(申磼), 안황(安滉),
    구성(具宬)

  • 3등

    정탁(鄭琢), 이헌국(李憲國), 유희림(柳希霖),
    이유중(李有中), 임발영(任發英), 기효복(奇孝福),
    최응숙(崔應淑), 최빈(崔賓), 여정방(呂定邦),
    이응순(李應順), 수곤(壽崑), 송강(宋康),
    고희(高曦), 강인(姜絪), 김기문(金起文),
    최언순(崔彦恂), 민희건(閔希騫), 허준(許浚),
    이연록(李延祿), 김응수(金應壽), 오치운(吳致雲),
    김봉(金鳳), 김양보(金良輔), 안언봉(安彦鳳),
    박충경(朴忠敬), 임우(林祐), 김응창(金應昌),
    정한기(鄭漢璣), 박춘성(朴春成), 김예정(金禮禎),
    김수원(金秀源), 신응서(申應瑞), 신대용(辛大容),
    김새신(金璽信), 조귀수(趙龜壽), 이공기(李公沂),
    양자검(梁子儉), 백응범(白應範), 최윤영(崔潤榮),
    김준영(金俊榮), 정대길(鄭大吉), 김계한(金繼韓),
    박몽주(朴夢周), 이사공(李士恭), 유조생(柳肇生),
    양순민(楊舜民), 경종지(慶宗智), 최세준(崔世俊),
    홍택(洪澤), 이춘국(李春國), 전용(全龍),
    오연(吳連), 이희령(李希齡)

【원문】

忠勤貞亮效節協策 扈聖功臣 輔國 崇祿大夫 唐興府院君 兼知經筵事 洪進 書

王若曰 若有一介臣 乃忘身而殉國 猶將十世宥 宜懋賞以酬功 玆紀勳於金鏞 用申盟於鐵券 惟卿溫恭 直諒明久 篤誠學優義經 文藝乃其餘事 業成庭訓 忠孝出於本原 早騰華於桂林 遂蜚英於荷橐12) 鑾坡13)薇省14)步武15) 切近16)於星辰 玉府銀臺 綸綍17) 揄揚18)乎雨露 頃緣國運之屯否 以致神器之流離 惟天命之難諶 自何能穀 悶予家之不造 鳴呼曷歸 及箕都之陸 沈 遽鐵甁之波蕩 存亡危急之若此 整頓扶持之又誰 投袂19)登舟 獨有溫太眞之慷慨 負羈奔命 孰如狐子犯之賢勞 灣塞行宮 尙幸孔邇於父母 河陽 官守20) 正是 式微21)之君臣 國有賢而庶興 予得卿以爲重 信存楚之由士 豈謂秦之無人 咨典禮而代言 腹心唯舌之是寄 洒涕淚以衛主 險阻艱難之備嘗 周旋儐接之儀 式贊詞令之美 左右軍國之務 克殫獻替之宜 彌綸22)壬癸之兩年 匡輔庚甲之一節 迄玆宗祊之復奮 遹觀鍾鼎之攸新 念 拮据23)於艱危 爲臣不易 思忠勤於前後 惟爾爲多 卿有力於興周 予豈亡乎在ㄴ 麟臺序爵 漢主思股肱之良 炯閣24)疏名 唐宗眷帷幄之績 匪但表獎偉烈 用能存樹風聲 終古有光 無德不報 肆策勳爲扈聖功臣二等 25)形垂後 超二階 爵其父母 妻子亦超二階 無子則甥姪女婿超一階 嫡長世襲 不失其祿 宥及永世仍賜伴倘六人 奴婢九口 丘史四名 田八十結 銀子七兩 表裏一段 內廐馬一匹 至可領也 於戱 功無愧於往哲 賞猶歉於 舊章26) 帶礪山河 敢渝 載書之語 丹靑形像 永觀卽啚之辭 故玆敎示想宜知悉

萬曆 三十二年 十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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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