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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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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 : 여주시 천송동 신륵사 내
□ 시 대 : 고려(조선 중수)

구룡루는 신륵사의 중심법당인 극락보전 앞에 서 있는 누각이다. 구룡루라는 이름은 석가모니 탄생 때 9마리용이 물을 뿌려 부처님을 목욕시켰다는 경전내용과 신륵사가 창건될 때 커다란 연못을 메우고 그곳에 살던 9마리 용에게 항복을 받고 그들을 제도하기 위해 지었다는 전설과 연관된다. 구룡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곁처마로 된 2층의 누각이다. 사찰의 누각은 누각루 아래를 통해 경내로 들어오는 누하진입(樓下進入)방식이거나 누마루 아래 공간을 수납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막아놓고 누각 옆으로 드러나는 우각진입(隅角進入)방식을 쓰는데, 구룡루는 우각진입 방식이다. 특히 구룡루는 누마루 기둥이 높지 않고 벽돌로 마감하여 일반 전각과 별 차이가 없어 누각의 느낌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신륵사는 극락보전과 탑, 그리고 구룡루의 중심축선상에 기하학적인 정확도를 유지하면서 배치되어 있다. 그러나 중심축의 연장선상에 남한강이 위치하기 때문에 신륵사로 진입하는 방식은 강 쪽에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범종루를 통해 들어오는 진입방식이기 때문에 구룡루는 통로의 기능보다 정자로서의 역할이 보다 컸다고 할 수 있다.

조선 영조 때 동대의 전탑을 중수하고 난 뒤 구룡루를 중수하였고, 또한 1858년(철종 9) 김병기(金炳冀)에 의해 신륵사가 중창될 때 구룡루도 중수되었다. 전면에 “구룡루(九龍樓)”라는 현판이 있고 극락보전과 마주보고 있는 뒷면에는 원충희(元忠喜)가 쓴 “봉미산신륵사(鳳尾山神勒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구룡루 안에는 김병기의 「신륵사중수기(神勒寺重修記)」를 비롯하여, 1919년 용주사 주지 강대련(姜大蓮)과 1932년 봉은사 주지 나청호(羅晴湖)의 제영시, 이천 부발면 매곡 하일당 이회명(李會明)의 「등청심루우시(登淸心樓偶詩)」, 그리고 1954년 원주 문막 김택영(金澤榮)의 제영시가 걸려 있다. 이회명의 시판(詩板)은 청심루가 소실될 때 옮겨 온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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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