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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로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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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기 : 가로 246㎝, 세로 211.5㎝

극락보전 내 왼쪽 하단에 봉안된 이 그림은 후불정화와 함께 1900년(광무 4) 5월 20일에 시작해 6월 10일에 완성된 것으로, 금어 비구(金魚 比丘) 수경당(繡璟堂) 승호(承琥)와 한곡당(漢谷堂) 돈법(頓法) 외 11명이 공동 제작했다.

한국불교신앙의 삼단구조 중 영가(망자)에 대한 시식의례(제사)를 지내는 조상숭배 혹은 영혼숭배신앙에 의한 하단은 대체로 대웅전의 좌측이나 우측 벽에 설치하며, 그곳에 거는 그림이 바로 감로국도(甘露王圖)이다. 감로왕도의 소의경전(所依經典)은 『불설우란분경(佛說盂蘭盆經』이며, 그 의궤는 『유가집요구아난타라이염구궤(瑜伽集要求阿難陀羅尼焰口軌儀經)』에 소의(所依)한다. 경전의 내용은 목련존자(目連尊者)가 아귀도(餓鬼道)에 빠진 망모(亡母)가 먹지 못하는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고, 이를 부처에게 청원하여, 승려들의 하안거가 끝나는 날인 백중일(7월 15일)에 과거·현재의 부모를 위해 시방(十方)의 부처와 스님께 온갖 음식을 공양하면 지옥에 빠진 고혼(孤魂)들을 극락왕생케 한다는 것이다. 즉, 효사상에 의한 영가천도가 주목적인 이 그림의 도상은 화면을 3분하여 윗부분에 칠여래와 아미타삼존이, 가운데에 성반과 아귀 및 제의식이 있고, 맨 아래쪽과 양 측면에 수고중생과 풍속장면이 배치되는데, 그 형식은 시기에 따라 여러 유형이 있다. 칠여래는 남무다보여래(南無多寶如來)·남무보승여래(南無寶勝如來)·남무묘색신여래(南無妙色身如來)·남무광박신여래(南無廣博身如來)·남무이포외여래(南無離怖畏如來)·남무감로왕여래(南無甘露王如來)·남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인데, 모든 고혼(孤魂)으로 하여금 탐심을 없애고, 법재(法財)를 구족(具足)케 하며, 악도(惡道)를 버리고 수의초승(隨意超昇)케 하고, 두려움을 떠나서, 열반락을 얻게 하고 인후가 잘 개통하여 감로미를 맛보아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 말하자면 모든 수륙 고혼들은 칠여래의 이러한 원력에 의해 극락에 왕생시키고, 수고중생들의 고통도 제거해주는데, 이때의 매개체는 성반에 가득 차려진 감로미가 된다. 감로왕도의 또 다른 명칭이 “시아귀도(施餓鬼圖)”인 만큼 아귀 또한 그림의 핵심으로서, 대개 2마리가 손에 밥그릇을 든 채 성반 앞에 배치된다. 이 아귀는 염구(焰口)라고도 하며, 형상은 배가 크고 목구멍이 바늘 같아서 먹지 못하는 고통을 당하는(“餓鬼名曰其形醜陋身體枯鋒 口中火然咽喉針鋒”) 고혼이다.

이러한 도상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신륵사 감로왕도는 19세기 말~20세기 초에 경기화파가 그린 흥국사 감로왕도(1868년)·불암사 감로왕도(1901년), 해남 대흥사 감로왕도(1900년), 강화 청련사 원통암 감로왕도(1907년) 및 법당 감도왕도(1916년)와 동일한 초본(草本)을 사용한 것이어서 설채법과 풍속 장면만 약간 다를 뿐 거의 유사하다. 도설 내용을 보면, 화면 상단 중앙에 채운(彩雲)을 타고 칠여래가 성반 앞에 내영해 있고, 좌우에는 아미타삼존과 고혼을 접인시키려 내영한 인로왕보살과 지장보살이 채운 위에 서 있다. 그 아래 오곡백과의 성찬으로 꾸며진 성반은 갖은 번(幡)과 풍성한 모란이 꽂힌 청화백자대화존으로 장식되었고, 그 앞에는 대형 놋쇠향로가 올려진 주칠탁자(朱漆卓子)를 중심으로 스님들이 범패 의식을 하거나 큰 유기에 가득 찬 음식을 성반탁자에 나르고, 상주들은 절을 올리고 있다(①). 좌측에는 천막을 치고 돗자리를 깔은 야단에서 고승들이 시식례를 위한 송주와 범패의식을 하는 등 한창 진행중인 제의식 장면이 묘사되었다(②). 성반 앞에는 두 마리의 아귀가 앉은 채 합장하고 있다(③). 화면 하단은 비늘처럼 수목과 산들을 중첩시켜 공간을 구획한 다음 그 안에 호환을 당하는 사람·물에 빠져 죽거나 절벽에서 떨어져 죽는 사람·관원에게 매 맞는 사람 등 수고중생들과 장기놀이·대장간·사당패의 어름놀이·소고를 치고 춤추는 모습·점보기·굿하는 무당 등 당시의 풍속장면들을 배치하였다(④~⑧). 특히 승려들의 재의식 장면과 백중날 흥겹게 노는 사당패의 연희모습, 대장간을 비롯한 생활장면은 당시의 풍속화나 복식을 연구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설채법은 코발트색 안료를 남용하고 호분이 섞인 탁한 청색과 짙은 녹색을 주로 많이 쓰면서 홍색을 적게 사용했기 때문에 화면이 차가운 느낌을 주는데, 그 중 코발트색 하늘에 백색구름을 배치한 화면 상단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성반이 차려진 곳의 바탕인 청색과 백색의 사선격자문(斜線格子文)은 19세기 말 경기파 화승들이 주로 썼던 수법이다. 필선은 역시 칠여래의 모습과 산·수목에서 경직된 철선묘를 쓰고, 세선(細線)을 써서 많은 등장인물들을 생생하게 표현하여 각 장면들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화기는 화폭좌우 백색화면 윤곽대 부분에 적혀 있는데, 다음과 같다.

畵記

「光武四年庚子五月二十二日神供六月初十日點筆因玆奉安于寺」
「緣化所」,「證明 比丘 洪溟月和 片手 比丘錦華機炯」
「金魚 比丘 繡璟承琥 比丘漢谷頓法 靑巖雲照 比丘靈昱 比丘亘燁 禮芸尙奎 比丘潤澤 比丘玟昊 沙彌璟洽 沙彌允河 沙彌仁修 沙彌璟環 沙彌斗正」
「持殿 比丘俊慧 供司 比丘定智 比丘昌心」,「誦呪 比丘頓祥 別供 比丘典盛 沙彌元文」
「茶角 沙彌仁贊 行者壽天」,「別座 比丘海文 道監比丘自彦」,「化主 比丘瑞雲昌珪」
「施主秩」,「坤命丁未生鄭氏單身保體 長子庚午生金重圭」,「坤命庚午生李氏兩主保體 速得貴男子發願」,「願以此功德 普及於一切 我等與象生 皆共成佛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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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