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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지역의 청동기시대 연구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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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지역의 청동기시대 관련 유적에 대한 조사와 연구는 부분적이지만,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되어왔다. 주로 이 시기의 조사는 고인돌과 같은 외형적인 유적은 물론 간석기 등이 발견되는 유물 출토지에 대한 것이었다. 여주지역에서는 흥천면 외사리의 고인돌과 대신면 파사산성 부근에서 찾은 간돌화살촉에 관한 것이 이 지역의 청동기시대 유적과 유물에 대한 첫 조사보고이다.

 

광복 이후에는 한동안 별다른 조사가 진행되지 못하다가, 1962년 점동면 흔암리의 청동기시대 취락유적이 소개되면서 이 시기의 여주지역 유적에 대한 조사가 본격적으로 실시되었다. 흔암리유적은 학계에 보고가 되었지만, 곧바로 발굴조사가 실시된 것이 아니고 1972년에 와서야 비로소 발굴이 진행되었다.

 

이 유적은 1972년부터 1978년까지 연차적으로 7차례에 걸쳐 조사가 이루어져 16채의 청동기시대 집터가 발견되었으며, 남한강 유역의 독특한 청동기 문화상을 알 수 있는 유물이 출토되어 이 시기의 표준유적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1)

 

1960년대에 들어와서는 유물과 유적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높아지게 되었으며 이 시기의 두드러진 점은 지역 주민들에 의한 청동기시대의 간석기와 이와 관련된 유물들이 수습되어 관계 당국에 신고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찾은 석기는 간돌검[磨製石劍]을 비롯하여 화살촉, 돌도끼 등이 있다. 그런데 청동기시대의 수습된 유물들은 대체적으로 남한강이나 그 샛강의 언저리 지역에서 발견되어 보고된 점이 지역적인 양상으로 볼 때 하나의 특징이다.

 

1970년대는 앞 시기와 좀 다른 모습으로, 청동기시대 관련 유적이 보존 관리되었다. 대표적으로 앞에서 설명한 흔암리유적이 발굴조사되어 유적의 성격이 밝혀졌다. 그런데 문화재관리국(지금의 문화재청)에 의하여 전국의 매장문화재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와 효율적인 보존을 위하여 시행된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覽)』의 발간을 계기로 전국의 매장문화재 자료가 처음으로 체계화되었지만, 여주지역에서는 청동기시대 관련 유적이 없는 실정이다.2)

 

1980년대에 들어와서 청동기시대는 물론 역사시대의 유적에 대하여도 조사가 실시되었다. 특히 이 시기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한강유역의 선사 및 역사시대 문화 양상 파악을 목적으로 여주지역에 대한 지표조사를 진행하였다.3) 이때 조사된 유적으로는 여주 교리와 멱곡리의 유물산포지, 북내면 석우리의 고인돌과 선돌유적, 흥천면 외사리 고인돌유적 등이다.

그리고 1990년대에는 먼저 석우리와 점동면 처리 선돌유적, 흔암리유적 등이 경기도 지정문화재로 등록되어 관리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96년에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남한강유역의 유적에 대한 지표조사가 광범위하게 실시되었다.4)

 

2001년에는 경기도박물관에서 경기도 3대 하천 종합학술조사의 일환으로 한강유역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면서 여주지역의 유적들이 소개되었다. 한강유역에 걸쳐 실시된 이 조사는 그동안 매장문화재가 알려졌거나 학계에 소개된 유적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한강의 샛강을 따라서 그 주변에 발달한 구릉지대를 정밀조사하였다.5) 2003년에는 북내면 신접리 고인돌유적이 발굴되었는데 축조 방법에서 독특한 보강시설이 조사되었다.6)

 

이와 같이 여주지역의 청동기시대 유적과 유물에 대한 조사는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계속 이루어져 왔으며, 선사시대 사람들이 터전을 잡고 살기에 알맞은 물줄기나 그 근처의 낮은 구릉지대를 중심으로 유적이 분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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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