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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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청풍, 자는 관여(觀汝)로 김익휴(金翊休)의 아들이다. 1792년(정조 16)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검열과 정자를 거치고 이어서 초계문신에 선발되었다. 1822년 『선원보략(璿源譜略)』을 수정(修正)한 공으로 통정대부에 올랐다. 1825년(순조 25)에 예방승지, 1834년 도총부도총관과 판윤을 역임하고, 1843년(헌종 9) 공조판서가 되었으며, 1849년 품계가 숭록대부(崇祿大夫)에 이르렀다. 정확한 시기는 미상이나 여주목사를 지냈으며, 영월루 근린공원내의 역대 여주 수령 선정비군에 1822년(순조 22)에 세운 김희화의 애민선정비(愛民善政碑)가 있다.
□ 참고문헌 : 『정조실록』, 『순조실록』, 『헌종실록』, 『여주읍지』(1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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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