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

그런데 문제는 신라가 백제를 공격하기 위한 주력 5만 병력이 경주에서 남천정까지 무열왕을 따라 진군했을까 하는 점이다. 대개 백제와의 접경에 주력을 집결시키고 무열왕 등 일부만 남천정에 이르고 다시 남하하였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李昊榮, 1997, 『新羅三國統合과 麗·濟敗亡原因硏究』, 서경문화사, 18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