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

북벌론을 제창하며 군비강화를 추진하였던 효종이 죽은 후 현종대와 숙종대 등에 군액감축론이 제기되었는데, 현종 12년(1671) 호조의 수입 10여만 석 중 무려 7~8만여 석이 훈련도감의 양병 비용으로 소요하였으므로 군액감축론의 핵심은 훈련도감 군인수를 축소하자는 것이었다(김종수, 2003, 『조선후기 중앙군제연구 훈련도감의 설립과 사회변동』, 혜안, 105쪽 및 270~27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