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

실제로 “왜란 중인 선조 30년(1597) 여주 등에는 왜적을 피해 온 남쪽 사람들이 매우 많았고, 그들은 식량이 다 떨어져 굶주려 죽게 될 상황이므로 위무(慰撫)하지 않으면 도적이 기내(畿內)에 가득찰 것이다.”(『宣祖實錄』 卷 92, 30년 9월 辛丑, 23책 295쪽)는 지적에서 알 수 있듯이 전쟁으로 인하여 일반 민의 생활은 파탄상태에 이르렀고, 호란에서도 그러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