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

申鉉國(1869~1949)은 일제강점기의 大儒學者로 본관은 平山이다. 高麗太師 申崇謙(?~927)의 후손으로 贈左承旨 申穆(1649~1706)의 8세손이자 申萬均의 아들로 여주군 가남면 본두리 해촌마을에서 태어났다. 28세 때 구한말의 대유학자 毅堂 朴世和(1834~1910)의 문인이 되어 학문을 닦았으며, 이웃한 華西學派와도 교류하여 大老祠에서 열린 毅庵 柳麟錫(1842~1915)의 講會에 참석하고 春川에서 열린 鄕飮酒禮에도 참석하였다. 1905년 여주향교의 講長과 鄕約長에 추대되었으나 사양하였고, 스승인 의당이 의병 擧義를 도모했다고 日警에 체포되자 이를 항의하다 체포되어 3개월 동안 옥고를 치루기도 하였다. 이후 고향의 昭谷精舍와 여주군 흥천면 외사리의 敬浦精舍에서 후학을 양성하면서 여주지역의 유학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晦堂 尹膺善(1854~1924), 李奎顯 등과 교유가 있었다. 묘는 여주군 가남면 화평리에 있다.